
퇴계선생(1501-1570)은 1561년에 도산서당을 직접 설계하여 짓고 기거하면서 수양과 저술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제자를 길렀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을 기리고자 1574년에 건립되었으며, 1575년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았다. 도산서원의 전신은 당연히 도산서당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9개의 서원 중 창건이후부터 지금까지 옮긴 적이 없는 서원이면서, 배향된 분이 생전에 직접 기거하면서 제자를 길러낸 공간이 있는 곳은 도산서원이 유일하다. 이런 면에서 도산서원은 장소 선정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공간을 미학이 뛰어나며 완성도가 높은 온전한 서원이다. 처음 그 모습을 그대로 보유한 서원으로 소수서원, 옥산서원, 병산서원이 있으나 배향된 분[퇴계]의 숨결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학문에 힘썼던 재자들의 숨결까지 간직한 공간은 없다.


서원은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도학자의 수양공간이고, 또 하나는 오로지 출세를 위한 학습공간이다. 문중에서 후손들의 과거합격을 목표로 족집게과외를 수행한 서원을 문중서원이라 부른다. 도산서원은 도학자의 수양공간으로 으뜸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깊숙한 산수에 위치하고 낙동강이 수려한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퇴계선생의 안목이 엄청난 경지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다.

서원의 출발은 도학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도학자의 공간은 마을이나 저잣거리와 떨어져 산수를 벗삼아 사색할 수 있는 청정공간을 좋아한다. 서원이 바로 이런 곳에 위치한다. 도산서원이 청정 장소이지만 명당(?)은 아니다. 명당은 출세와 재물 그리고 자손의 번창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므로 매우 세속적인 용어이다. 따라서 도학자가 추구하는 목표아는 다르다. 첩첩 산중에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서 절해고도나 다름없다. 절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이다. 삶의 근심을 내려놓고 도학수양에 전념하라는 의미의 도학 장소이며 도학 공간이다.


퇴계계선생은 정여창, 김굉필, 이언적, 김인후 선생들과 달리 사화에 엮이지 않은 도학자였다. 퇴계선생의 당당한 삶의 자세는 도산서원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도산서원은 다른 서원에 비해 탄탄한 지형에 당당하고 실용성이 강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퇴계선생은 소수서원을 정비하였으니 도학자의 자연환경이 어떠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의 숨결이 어려있는 공간으로, 그가 직접 선택한 장소이고 직접 설계하여 지은 서당이 있다. 공간의 당당함은 그의 성품에 기인한다. 양명한 능선에 서원의 건물들을 배치하였고, 강학공간 아래 동재와 서재 뿐 아니라 동과 서에 도서관을 지었고, 전사청과 고직사를 따로 세워 실용성을 극대화 하였다. 서원 앞 마당은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원생들의 공간이었다.
정말 공부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이런 곳에 대학교가 있어야 한다.



퇴계의 자연관과 지형관은 남달랐다. 그는 일찌기 향교교육의 단점과 서원교육의 장점을 피력하였다. ‘성균관이나 향교는 한양이나 지방도시의의 성곽 안에 있어서 규정에 저촉되는 장애가 많고, 시장통과 같은 주변 환경에 정신을 빼앗겨 학문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다. 서원은 산수를 곁에 두고 오로지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으니 나라에 필요한 현달한 인재를 양성함에 있어서 성균관이나 향교보다 훨씬 유리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퇴계 이황은 서원이라는 새로운 교육기관을 통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확산시키려고 했다. 서원을 통하여 도학적 인재를 배출하게된 동기를 부여한 분이 퇴계선생이다.


풍수관점에서도 유네스코 등재 서원중 유일하게 안정적인 입수래용과 좌청룡, 우백호 등 사신사를 가장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좌청룡과 우백호 사이가 협소한지만 이는 독서하고 수행하는 사람에겐 집중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사신사를 완벽하게 갖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당함을 의미한다. 당당함은 정치적으로 굴하지 않는 면을 말한다. 퇴계선생의 당당함은 후학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게 하였으며 그들이 퇴계학파를 형성하였다. <국제퇴계학회>가 있는데 우리나라 유학자 중에서 국제학회가 있는 것은 퇴계학 뿐일 것이다.


고산구곡은 퇴계선생이 자연과 벗하며 수양의 동반자로 삼았음을 말해준다. 서원이 품은 자연환경에 이름지은 구곡이 있으나 모든 서원에 구곡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려한 자연이 있는 곳에 지은 서원이라야 구곡문화가 있다. 구곡문화는 도학자의 전유물이다.

천연대에서 바라본 시사단은 정조대왕은 1792년(정조16)퇴계선생의 학덕을 존숭하고 추모하기 위해 도산서원에 제사를 지내고 이곳에서 과거를 치루어 영남의 인재를 선발했다. 이 때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7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과거가 지방에서 거행된 특별한 경우로 퇴계선생의 기품이 드러나는 기념비적 공간이다.
땅의 탁월함은 인재배출에 있다. 도산서원은 류성룡을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줄했으므로 서원 중의 으뜸이라 하겠다.
으뜸서원인 도산서원의 공간 하나하나에서 퇴계선생의 안목과 인품 그리고 도학자적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출처 : 서울동인풍수 김규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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