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경주최씨의 근원을 알아본다

운강 이상걸 2023. 2. 12. 18:19

경주최씨(慶州崔氏) 경주를 본관으로 하며, 신라의 석학 최치원을 시조로 한다.

경주최씨 고택

 

시조 최치원(崔致遠)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다. 최치원은 869년(신라 경문왕 9)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간지 5년후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무랑시어사에 이르고 자금어의를 하사받았으며, 제도행영 병마도총 고변의종사관을 역임하고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병부시랑 지서서감이 되었으나 외직을 원하여 대산, 천령, 부성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고 아손이 되었다. 그 후 난세를 비관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며 수도하다 생을 마쳤다. 그는 한시문집으로 '계원필경(桂苑筆耕)'(20권) 등의 명저를 남겼다.
경주 최씨는 조선시대에 퇴조하여 문과 급제자 42명을 배출하였을 뿐 상신, 대제학은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하였다.[1]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